드라마2015. 4. 5. 17:37

 조선 최고 장수 신립과 왜군 선봉장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가 드디어 만났다. 결과는 참패였고 신립 장군도 그 자리에서 남한강으로 몸을 던져서 최후를 맞이한다.

 

 처음 이 역사적 사실을 접했을 때 조선 최고 장수가 저 정도 밖에 안되나,  신립 장군이 전투보다는 정치를 잘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패전 원인에는 신립 장군의 판단 착오(?)가 한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천해 요세인 조령(현 문경세재)을 놔 두고 탄금대를 택하여 배수진을 쳐서 왜적을 맞이한 것이었다.





 물론 징비록 15회 신립의 대사에서 탄금대를 결전 장소로 정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신립이 명장으로 명성을 쌓은 것은 북쪽의 오랑캐들을 기마병으로 무찌른 것이었고 그래서 조령은 기마병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급하게 모집은 군인들이라 훈련이 충분이 되지 않아 기습 전술에 적합하지 않으며,  조령에서 적을 맞을 경우 겁을 먹은 군사들이 탈영을 지형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로 말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대실패였다. 전투에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한양에서 왜군을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도 저도 아닌 그냥 대 참패였고 그 역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여기가 달천(이미지 출처 : doopedia.co.kr)

 재밌게도 신립 장군의 변명이 등장하는 고전소설이 있다. '달천몽류록'이라는 선조 시대에 한 양반이 지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현실에서 탄금대 주변을 흐르는 달천에서 당시 신립의 패전을 한탄하면서 이 소설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신립은 달천몽유록에서 주인공의 꿈에 등장하여  전투가 자신의 전략적 선택이 원인이 아닌 정예병이 없는 사회적제도가 자신을 패장으로 만들었다고 원망했다고 나온다. 그만큼 신립의 탄금대전투의 패배가 당시 양반들에게 뼈아픈 패배였음으로 보여준다. 


 결국의 그 대패는 선조 임금의 몽진으로 이어졌고 이는 당시 지도층인 양반들의 엄청난 권위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었다.  



신립 장군(김형일)과 소서행장(이광기)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sakcafe/57525)



 뛰어난 장수는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전략을  펴는 것으로 역사 기록은 증명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항상 전투에 임했다고 후대 역사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물론 명량해전 같은 예외적인 상황도 있었지만 말이다.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 장군의 기마병들은 탄금대 무른 땅에 적응하지 못하엿으며 조총이라는 신식 무기에 힘없이 쓰져지고 말았다. 결국 탄금대전투의 패배는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방비 태세를 보여준 정점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준비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조선 최고의 장수도 별 수 없었다.


 이후 선조는 치욕스러운 몽진길에 오르게 되고 이순신 장군의 활약과 함께 명의 원병으로 전세는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징비록에선 이를 어떻게 다루게 될지 그 다음이 기대된다.  



Posted by 찬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