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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18 '부부의 세계' 엔딩, 준영이가 가출한 이유는?
드라마2020. 5. 18. 04:56

 부부의 세계가 드디어 종영 했다. 보는 중간에 이걸 왜 보고 있지 하는 현타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망할 드라마가 매회 던져주는 쫄깃쫄깃함에 매주 본방을 사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부부의 세계'의 주인공들은 정신병자 같아 보인다. 지독하게 서로를 저주하며 온갖 은모를 꾸며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어도 한두 회가 지나면 서로 별일 아닌 듯 다음 모드로 들어가곤 했다.

 이태오(박해준 분)과 손재혁(김영민 분)의 경우도 자신의 와이프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분풀이로 손재혁의 궁지에 몰아넣는다. 손재혁에게 어린 식당 종업원을 사주하여 바람피우게 했고 이를 부인에게 들키고 만다. 다시 잘해보려고 했던 재혁과 고예림(박선영 분) 사이가 이 일로 틀어진 것이다. 그런데 한두 회 지나자 둘은 함께 친구로 술을 마신다.

 이런 전개는 수차례 반복된다. 그렇게 모질게 이태오와 지선우(김희애 역)는 이혼했다. 아들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아들일 죽인 것처럼 이태오에게 연기하여 폭력 사건까지 만들었다. 이태오도 이혼 2년 만에 성공해서 복귀하여 지선우를 스토킹 하며 괴롭힌다. 그런 범죄 수준의 합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애증이 교차하면서 다시 하룻밤까지 보낸다.

 너무나 너무나 긴박하고 심장이 뛰는 BGM에 매회 서로에게 주는 상처의 수준은 정말 상처를 초월했다. 한 번만 겪어도 평생 안 보고 살 정도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관계로 모이지만 이야기의 한 텀이 끝나고 나면 무언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듯 다음 스토리를 이어나가길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리지 않고 이야기에 흡입하게 만드는 것은 배우들의 엄청난 열연과 뛰어난 연출이었다. 마지막회에 이태오가 준영이를 물에 빠뜨린 것처럼 장면을 구성하고 이를 오해한 지선우는 급하게 과속하며 달려간다. 음악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처절한 BGM이 흐른다. 악마의 연출이다.

 마지막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등장했다. 준영(전진서 분)이가 아빠와 엄마가 이태오의 자살 시도로 인해 서로 감정이 남아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를 견디지 못해 가출한다. 그리고 1년 후. 중학생 아들이 가출했는데도 지선우은 일상생활을 평소처럼 이어가면서 아들을 기다린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다. 

 이는 드라마의 주제를 던져주기 위한 엔딩의 설정으로 보인다. 가출한 준영은 단순한 혈육인 아들 만이 아니라 지선우가 이혼 이후에 부부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며 생겨버린 성처의 본질인 읽어버린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들을 기다리는 지선우의 무엇보다 언니 자신을 용서하라는 고예림의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표현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용서란 말을 입에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아.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단죄하는 것만큼이나 오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깐. 그저 난 내 몫의 시간을 기다림으로써 내 자리를 지킬 뿐이야. 언젠가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면서. 그 불확실한 희망을 품고 사는 것. 그 불안을 견디는 것.  모든 상황을 내가 규정짓고 심판하고 책임지겠다고 하는 오만함을 내려놓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 

삶의 대부분을 나눠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일이란 내 한 몸을 내줘야 한다는 것. 그 고통은 서로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인 가해자도 정말 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아프게 곱씹으면서 또한 그 아픔을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매일을 견디다 보면 어쩌면 구원처럼 찾아와 줄지도 모르지. 내가 나를 용서해도 되는 순간이..."  왔니? 

아들이 돌아오는 순간이 결국 지선우가 지선우를 용서하는 순간이라는 여운을 남기며 드라마는 엔딩을 맺는다. "왔니?"라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누군가와 관계를 맺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긴다. 지선우의 과거 환자 하동식(김종태 분)이 했던 말처럼 산다는 것은 불안의 연속이고 혹하면 뒤통수 맞기 일상이다. 특히 부부는 매일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며 살아가기에 서로 상처를 남기기에 너무 쉬운 관계다. 이는 부부의 세계이자 모든 사람 관계의 세계인 듯싶다. 

 서로에게 상처 주다 보면 내가 받은 상처와 내가 준 상처로 인한 괴로움에 정작 지금의 내가 어디 있는지 잃어버리게 되기 쉬운 것 같다. 하동식의 말처럼 남은 내 아픔에 관심 없다. 남에게 상처 주고 나와 받은 상처에 집착하지 않는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다 보면 '그분'이 찾아오지 않을까?

Posted by 찬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