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7. 10. 12. 22:22

추석에 중학생 초등학생 두 조카를 데리고 극장을 찾았다. 간만에 명절 할아버지 앞에서 치고박다가 초등학생 동생 녀석이 우는 바람에 할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1년에 몇 번 못보는 초카들이라 기분도 달래줄 겸 극장을 찾았다. 막상 초카들이랑 함께 볼만한 영화가 마땅치 않았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자주 겪는 일이지만 흥행하는 영화나 누군가 흥행하기를 바라는 영화만 많은 상영 시간대를 잡아 먹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남한산성' 밖에 없었다.


 두 녀석하고 나이는 살짝 안되지만 같이 보겠다고 하기에 함께 들어갔다. 영화는 긴박하게 전개되긴 했지만 대부분 대화로만 진행되어 보는 사람에 따라 무척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듯 싶었다. 안 그래도 조카 녀석이 보는 내내 엄청 몸부림을 쳤다.




 조카들에게 미안하지만 영화에 푹 빠져서 봤다. 원래 역사를 좋아했고 감독이 그 시대를 통해서 지금 우리 시대를 들여다보려는 의도가 괜찮게 느껴졌다. 주화파와 척화파를 대표하는 최명길과 김상헌 두 정승과 인조와의 대화 속에 드러나는 갈등 관계도 흥미진진했다.


 지금의 기준에 빗대어 보다면 주화파인 최명길은 진보로 척화파의 김상헌은 전통 보수, 그리고 영화에서 그러지는 영의정 등 다른 인물들은 수구 보수 정도로 보였다. 


 정통 보수 척화파 김상헌도 결국 현실 정치가 민중의 삶과 괴리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수가 분한 신돌쇠의 대사에서도 읽히듯 그들에게는 척화파든 주화파든 중요한 것이 아닌 하루하루 안정된 삶이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김상헌으로 그려지는 진짜 보수는 지금 시대에 찾아볼 수 없다. 김상현은 두 가지를 가졌다. 첫째는 국가 안보를 진짜 걱정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서 천민과도 소통하며 움직였다. 두번째 결국 그의 계획은 실패하고 왕은 치욕을 겪고 백성들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하자 그는 목숨으로 이를 대신했다. 그는 부끄러운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우리나라에선 이런 보수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 첫째는 진짜 안보를 걱정했었나 하는 대목이다. 지난 9년 간 자칭 보수라고 하는 세력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을 보면 안보는 고사하고 각종 방산 비리와 사이버사령부를 댓글 부대를 운영하면서 국가를 지켜야 할 군대를 엉뚱한 방향으로 소모하게 만들었다. 


 특별한 대안도 없으면서 북한과 대화를 단절하고 장지적으로 평화적인 장치가 되어줄 수 있는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미국과의 중요한 협상 카드가 되어줄 사드 배치도 대통령이 탄핵되어 부재한 상황에서 누가 결정한 지조 모르고 마음대로 들어와 배치해 버렸다.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군대와 정보기관인 국정원을 이용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을 위해서 마음대로 이용했다. 댓글 부대를 운영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자신에 반하는 국민들을 괴롭혔다.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은 앗쌀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든 청과의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 남한산성 외곽의 군사들과 연통하려고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실패하고 왕이 엄청난 수모를 당하자 그는 자결한다.


그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지난 9년간 자칭 타칭 보수 세력은 '남한산성'에서 그려지는 이런 김상헌의모습을 전혀 보여준 적이 없었다. 말로만 안보하면서 최근에는 전술핵 배치에는 현실 가능성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국민들의 위기감만 고조하고 잇는 형편이다. 그들이 김상헌과 같이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다면 전시작전권부터 회복했을 것이다. 


 '남한산성'을 보면서 지난 9년간 그리고 지금 진짜 보수 세력의 부재를 느낀다. 지금 시대에 주화파 최명길과 영의정 등 자신의 입지 만을 생각하는 수구 세력들은 있지만 감상헌 같은 진짜 보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스스로 적폐 세력에서 벗어날 기회임에도 번번히 그 똥물에서 놀기를 바라는 듯싶다.  

 

 지금의 적폐청산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상헌'과 같이 진짜 안보를 걱정하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보수 정치인이 등장할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7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그런 싹수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래서 국민들에게 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찬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