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2010. 3. 17. 16:01

 94년 월드컵 때 고등학생이었다. 스페인 전을 잊을 수 없다. 극적으로 비겨서 그런게 아니라 당시 교장 선생님의 만행(?) 덕분이었다. 우리도 여느 학교와 같이 오전 시간에 축구 경기를 전교생이 같이 시청했다. 스코어는 2:0 후반 10분 남기고 패색이 짙자 갑자기 티비가 꺼졌다. 이미 진 것 같으니 수업하라는 뜻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지더라도 끝까지 경기를 보고 싶었다. 갑자기 라디오 등을 듣던 친구들에게 비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분은 좋았지만 너무 억울했다. 후에 교장선생님은 미안하다는 사과의 뜻을 우리들에게 알렸지만 그 순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볼리비아 전은 모의고사라 라이브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94년 월드컵이 기억 속에서 안타까움으로 끝이났다. 역대 월드컵에서의 최고의 선전을 펼쳤지만 그 열기는 프로축구로 이어지진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부터 프로축구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K리그는 총 7팀. 그 중에 세 팀은 서울연고였다. 부산에는 대우로얄즈라는 명문구단이 있었음을 아니 대우로열즈가 부산 연고였음을 그 때 알았다.  당시 경기에 있는 토요일 저녁에 자주 구덕운동장을 찾았다. 당시 아미르의 현란한 개인기와 샤샤의 멋진 골을 기억에 생생하다.(왜 용병만 기억이 나는지..)

구덕운동장 야경. 밤엔 좀 멋있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kim054040)


 벌써 15년 흘렀다. 격세지감이다. 팀은 벌써 두배나 불어서 15개 팀이 됐고 월드컵 이후에 세계수준의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린다. 각 팀마다 서포트들의 다양한 응원문화가 생겼다. 유럽의 클럽들과 비교하면 제반 여건과 시스템이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 때와 정말 많이 달라졌다. 학창시절부터 프로축구를 좋아했던 팬으로서 한 것 없이 가슴이 뿌듯할때도 있다. 그 시절부터 프로축구를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주말 전북과 서울의 빅매치가 있었다. 스포츠뉴스에서 전북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티아라가 온 줄은 몰랐다. 스포츠뉴스에선 걸그룹이 왔다는 소식은 다루지 않으니까. 지난 월요일에 티아라가 그 경기 때 등장했다는 포토뉴스를 접했다. 반가운 마음에 클릭을 했다. 그냥 그녀들의 의상을 보고 아 친구들이 전북을 응원하러 왔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FC서울 개막전이라는 건 전혀 생각도 못하고 말이다. 그러곤 그냥 무심결에 사진을 흐뭇한 마음으로 봤다.   

 

서울 팬과 전북 색깔의 티아라. 묘한 대조다
(이미지 출처 : NEWSIS)

 멍청함을 깨닫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티아라가 전북을 응원할 리가 없는데..  그러고보니 그날 일요일 SBS인기가요에도 같은 의상을 입고 공연을 했었다. 결국 화살은 행사를 준비한 FC서울과 티아라 그녀들에게 돌아갔다. 참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티아라 그녀들이 과연 본인들이 입은 의상이 전북의 유니폼 색깔과 같았음을 상상이나 했었을까? 물론 그녀들이 비판에서 100% 자유로울 수는 없다. FC서울의 홈개막행사로 초청된 것이었다면 그리고 프로라면 의상 하나에도 신경쓰는 게 맞았다.

 이제 축구팬들은 민감하다. 15년 프로축구 유니폼은 그냥 유니폼에 불과했다. 팀에 상징과 같은 그런 의미는 가지지 못했다. 서포터도 없었던 시절 유니폼 색상과 모양은 자주 변경됐고 팬들도 그런 것은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서포터 문화는 정착이 되어 있고 팀들도 유니폼의 기본색상과 모양을 유지하면서 디자인을 변경한다. 이번 해프닝을 통해서 프로축구가 갈 길은 멀지만 새삼 팬 문화가 많이 성장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 티아라의 여섯 소녀들이 축구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찬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