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와 함께 가장 많이 듣고 외웠던 시조가 정몽주의 '단심가'이다. 어릴 땐 그 노래가 시대적 배경도 모른 채 시가 주는 비장함만 공감했던 것 같다.
육룡이나르샤에 그 시조가 등장하는 역사적 장면이 등장한다.
" 1392년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를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황주(黃州)에 드러눕자 그 기회에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했으나 이를 눈치챈 방원(芳遠:太宗)의 기지로 실패, 이어 정세를 엿보려고 이성계를 찾아보고 귀가하던 도중 선죽교(善竹矯)에서 방원의 부하 조영규(趙英珪) 등에게 격살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
육룡이나르샤는 퓨전 사극 답게 특유의 속도감과 빠른 편집 등으로 이방언이 포은 정몽주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 전개를 긴박하게 그려냈다. 서로의 운명이 엇갈린 상황이 결국 다음회에 '하여가'에 '단심가'로 화답하며 결국 역사의 운명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 같다.
전작으로도 볼 수 있는 '뿌리깊은 나무'처럼 무술 고수들의 대결도 기대하게 만든다. 결국 무휼과 척사광의 대결이 이방원과 정몽주의 운명과 함께 그려질 모양이다. 무횰이 그의 스승과의 대화에서 등장한 것처럼 몇 가지 복선이 승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이방원과 정몽주의 운명의 장소, '선죽교'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68057&cid=42954&categoryId=42954)
실재 역사에서도 이성계와 이방원은 정말 포은 정몽주를 아낀 것 같다. 그의 사상이나 인물됨이 충분히 그러할만 했지만 이방원이 마지막으로 보낸 '하여가'는 죽음 직전에 그에 대한 존중이자 아쉬움에 대한 표현은 아니었을까 한다.
역사의 평가가 어떠하든, 포은의 고려 왕조를 향한 진심은 역사적인 충신으로 존경할 수밖에 없을 듯 싶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정말 정도전과 정몽주가 함께 조선을 건국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여가 [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100년까지 누리리라
단심가 [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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