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에는 영화 '휴민트'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장 흥행 부진 후 넷플릭스에서 재조명된 이유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가 넷플릭스 공개 이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극장 개봉 당시에는 '왕과 사는 남자'에 밀려 흥행에 크게 고전했고,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채 빠르게 스크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넷플릭스 공개 이후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사뭇 달라지고 있다.
개봉 당시 비판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직접 본 소감은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군함도 때도 그랬지만, 온라인의 혹평이 반드시 실제 관람 경험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휴민트, 홍콩 느와르의 오마주로 읽어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작품이 있었다. 바로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喋血雙雄, The Killer, 1989)'**이다.
류승완 감독은 80~90년대 홍콩 영화를 보며 성장한 이른바 '비디오 키드' 세대다. 그 영향이 '휴민트' 곳곳에 짙게 배어 있다. 영웅본색에서 시작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홍콩 느와르 장르의 정점으로 꼽히는 '첩혈쌍웅'의 구조와 정서를 상당 부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두 영화의 핵심 공통점 3가지
① 적대적 위치에 있는 두 남자 주인공
'첩혈쌍웅'에서는 청부 킬러 주윤발과 경찰 이수현이 맞선다. '휴민트'에서는 북한 특수요원 박건(박정민)과 국정원 요원 조 과장(조인성)이 대립한다. 두 영화 모두, 구조상 절대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두 남자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② 결국 한 편이 되어 싸우는 서사
'첩혈쌍웅'에서 이수현은 수사 과정에서 주윤발과 엽천문의 관계를 알게 되고, 공통의 적에 맞서 함께 싸우게 된다. '휴민트'도 동일한 구조다. 남과 북의 두 요원이 대립하다가 결국 힘을 합친다.
③ 노래하는 여자 주인공
두 영화 모두, 두 남자를 이어주는 여성 캐릭터가 노래를 부르는 인물이다. '첩혈쌍웅'의 엽천문은 바에서 노래하는 가수이고, '휴민트'의 채선화(신세경)는 북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한다.
특히 채선화가 무대 위에서 패티김의 '이별'을 부르는 장면은 '첩혈쌍웅'의 주제가가 영화 전반을 감싸는 방식과 정확히 대응한다. 이 노래는 박건과 채선화 사이의 감정선을 직접 대사 없이 전달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류승완 액션의 진가 — 블라디보스토크 시퀀스
스토리 구조는 오마주지만, 액션만큼은 완전히 류승완 감독의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가운 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카 체이싱 시퀀스는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만큼 스케일이 크다. 러시아 마피아 아지트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총격전은 뼈마디가 울리는 듯한 타격감이 느껴지는 류승완 특유의 연출로 가득하다.
'첩혈쌍웅' 오마주 장면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박건과 조 과장이 총구를 맞대는 장면, 두 사람이 총격전 속에서 서로 호흡을 맞추는 장면, 유리 상자를 배경으로 한 액션 시퀀스까지. 마지막 황치성(박해준)과의 대결에서는 '영웅본색' 시리즈 특유의 정면 총격 장면도 등장해 그 시절 홍콩 영화를 즐겼던 관객에게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왜 극장에서 외면받았나 — 기대치의 문제
개봉 당시 '휴민트'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관객 대부분은 류승완 감독의 전작 **'베를린'** 같은, 첩보 스릴러 장르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휴민트'는 그 기대를 의도적으로 비껴간다.
'첩혈쌍웅'이 우정과 의리를 중심에 뒀다면, '휴민트'는 멜로와 휴머니즘이 중심이다. 이 선택이 당시 관객에게는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린 시절 동경했던 홍콩 영화를 거대 자본을 들여 자기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는 감독**이 된 류승완의 작업으로 읽힌다. 그 경지가 쉽게 오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이 영화에는 나름의 존경스러운 면이 있다.
총평
넷플릭스 '휴민트'는 홍콩 느와르의 오마주를 기반으로 하되, 류승완 감독만의 액션 연출과 멜로 정서를 얹은 작품이다. 처음부터 첩보 스릴러를 기대하지 않고, 80~90년대 홍콩 영화에 대한 헌정작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 장르: 액션, 멜로, 첩보
- 감독: 류승완
- 주연: 조인성, 박정민, 신세경, 박해준
- 넷플릭스 공개 여부: 현재 스트리밍 중
- 추천 대상: 홍콩 느와르 팬, 류승완 감독 팬, 액션 영화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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